...죽음의 깊은 골짜기를 지나 결국 사랑하는 아들을 먼저 보내고도 당신의 믿음은 아직 유효한가?
이런 물음들은 내 실존적인 물음인 동시에 목사이기에 교우들에게 대답해 주어야 할 신학적인 물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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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런 고통의 끝자락에서 역설적이게도 하나님과 사람들의 사랑을 어느 때보다 더 깊이 체험한다는 것 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습니다.
현택이가 간 후에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오히려 깊어지는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까요?
1986년부터 조직신학으로 학위를 받은 2002년 까지의 신학적 탐구가 2004년 아들을 보내는 그 실존적 경험 하나로 모두 말장난이었음이 드러났고,
그런 신학적 탐문은 깊은 죽음의 골짜기에서 솔직히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 이라는 방대한 저서를 집필하다 결국 완성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의 절대경험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그래도 평생을 평생을 썼는데 완성해야 하지 않겠느냐` 고 간곡하게 부탁 했는데도 이런 말을 남기곤 끝내 더 쓰지 않았다 합니다.
“ 내가 무모했지. 그런 지푸라기 같은 하찮은 것을 쓰려고 그 많은 세월을 보내다니...”
아들을 보내 놓고도 여전히 믿음을 지킬 수 있는가?
솔직히 가질 수도 있고, 가질 수 없기도 합니다.
나는 이제 예전의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가졌던 신앙으로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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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환 목사님의 <뜻밖의 선물> 중에서
믿음 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나도 이 시간들을 지나고 나면
이 전에 가졌던 신앙 으로는 살아갈 수 없었던 시간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
믿음으로 이 상황과 시간들을 잘 견뎌내고
그 시간을 지나치며 얻게 된 주님의 뜻밖의 선물들을 받았다는 것일 테니까...
묵상중에 보여주신다..
홍해를 가르고 그 바닷길을 건너게 하신 하나님....
바닥까지 마른 땅으로 걷기에 힘들지 않도록 해주신 그 사랑이 스며 있지만
그 바닷길을 통과하는 이스라엘 사람들....
양 옆에 시퍼렇게 서있는 물기둥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겠느냐?
그 물기둥이 나를 향해 달려 들까봐 두렵고도 시려운 마음으로 걸어갈 때
그 때에도 내가 그들 곁에 함께 있었다...
나는 늘 네 곁에 함께 한다....라고 말씀 하신다.
나도 이 시간들을 주님과 함께 잘 견뎌내고
뜻밖의 선물을 받아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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