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리지의 노래

첫 제자들의 동창회에 다녀와서(2012.8.11.11.47)

은피리 2013. 2. 19. 00:30

                                                                                                   

 

첫 제자들의 동창회에 다녀와서......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에 도라지꽃이 피어나는 곳이 있다.

달이 뜨지 않는 밤이면 바로 곁에 누가 섰는지도 알 수 없이 칠흑같이 어둡다 는 표현을 알게 된 곳.

 

달 이 뜨는 밤이면

그 달 빛이 얼마나 황홀하게 아름다운지...

얼마나 그 빛이 밝고 환한지를 처음 알게 되었던 곳.

 

연탄불 을 갈기 위해

뜨락에 내려서면 온 몸으로 와락 쏟아져 들어오던 그 수많은 별들을 품에 안던 곳

 

그 곳에서

첫 제자들을 만났다.

 

그 아이들과 시작한 교사생활은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처럼 아련하다.

출근하여 자리에 앉다가 방석 밑에 넣어둔 잘 익은 석류 송이를 발견하기도 하고

기침으로 수업하기 힘들었던 어느 날인가

설합 속에 종이에 둘둘 말려 들어있던 쌍화탕과 알약 한 알...

아카시아가 천지에 피어날 때면 책상위에 꺾어져 올려있던 그 흰 꽃송이들...

집에서 익은 거라며 알이 듬성 듬성 박힌 포도송이를 불쑥 내밀던 마음들...

노을이 지는 운동장 가에서 주번아이들과

은사시나무 잎사귀를 비질하여 한 가득 모아 불 붙여 들이마시던 낙엽 태우는 냄새...

소 꼴 먹이러 가는 아이들과 함께 올라 가재를 잡던 그 맑은 개울...

그 아이들 머리위로 뚝 뚝 떨어지던 잘 익은 홍시들의 그 색깔....

새파란 하늘에 번지던 감 가지 꺾는 소리....

 

비 그친 어느 날 까맣게 빛나던 그 기대에 찬 눈망울들이 잊히질 않는다.

무얼까? 생각하며 그 기대에 찬 새까만 눈망울을 바라보다가 발견한

피아노 위에 새파랗게 뛰어 다니던 청개구리들...

교무실로 도망친 나를 찾아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던 현희의 그 이쁜 얼굴도 남아있다.

 

겨울 방학 빈 교무실에서 근무를 서던 내게 생일 케이크를 들이밀던 깡정이.

연두 빛이 가득한 봄 날 자전거에 떡 한 봉지를 싣고 달려와 쑥을 뜯어서 직접 만들었노라며 들이밀던 배추머리 동민이...

떡을 안 먹던 나도 그 날은 떡을 입 안 가득 베어물고 너무나 맛나게 먹었더랬지.

어느 것 하나도 아름답지 않은 것 없는 빛깔로 내 마음에 그림이 되어 남은 그 시간들 속에

잠시 걸어 들어갔다 나온 듯 과거로의 여행을 했던 시간이었다.

 

교사는 새롭게 단장을 하였고

울타리를 빙 둘러 쳤던 탱자나무의 그 싱그런 향내도,

운동장 가장자리에 반짝거리는 잎사귀를 가득 달고 섰던 은사시나무도 베어 없어졌고

과수원과 그 옆에 있던 테니스장 자리에 멋진 체육관이 들어서 있었지만

아이들이 아침자습을 하던 시간에 복도에 나와 감탄사를 연발 날리며 바라보던

비단 같은 초록의 보드라움으로 깔려있던 논과 그 사이 휘 늘어진 솔숲,

그리고 하얀 백로들이 노닐던 그 풍경은 그대로 있고

그 멋들어지게 휘늘어진 노송들의 군락이 아직 운동장 귀퉁이에 자리하여 새파란 바람이 넘나들고 있었다.

 

우리들이 매일 밤마다 쏟아지는 별무리를 감탄사로 껴안으며

그 휘황한 달빛 속에 쏘다니던 사택도 모습은 조금 변했지만 그대로 거기에 있었고

떨어진 감꽃을 줍고, 떨어진 홍시를 주워 먹던 그 감나무도 거기 있었다.

어쩌면 나는 너무나 복 받은 사람이다.

 

첫 발령지의 추억이 이렇게 아름답게 마음에 채색된 이가 어디 흔하랴

그 속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내 동료 교사들...

그들의 마음속에 공유된 느낌이리라.

나에겐 도라지 꽃 빛깔로

김상련 선생님에겐 아마도 달맞이꽃 빛깔로 남지 않았을까?

아직도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읊조리는 이종숙 쌤에게는 푸른 파도빛깔로 기억되리라...

 

지금은 그런 마음의 아이들이 보이질 않는다.

날마다 나를 설레게 하고, 나를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나를 착한 선생으로 만들어주는 그런 아이들...

교실에 들어서면 시퍼렇게 멍이 들어 나오는 마음으로 가끔은 아이들이 정말 미울 때도 있지만

첫 발령지에서 만난 이 아이들의 기억이 내게 새로운 에너지로 바로 서게 만들어 준다는걸 너희들은 알까?

 

만나보니 마흔이 된 제자들...

함께 나이 먹어가지만 그들의 그 지나간 한 때의 시간들이 교사로 평생을 살아가는 내게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행복한 시간들로 남아,

어렵고 한심한 교실 속에 서있을 때마다 새로운 힘을 주는 이야기들로 남아 있다는 걸 상상도 할 수 없을 테지.

 

지금에야 고백하는 거지만

너희들이 졸업하던 그 해 내 마음이 얼마나 속 상했는지....

얼마나 보내기 싫었는지....

너희들 땜에 새로 입학한 새내기 입학생들조차 미웠는지....

그 때 이 시 한 편을 발견 하고는 마음을 다스릴 수가 있었지.

꼭 기억하렴!

너희들은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사람들 이란걸....

나를 위로 했던 시 한 편으로 이야기를 맺음한다.

 

 

스승의 기도

                                        도 종 환

 

날려 보내기 위해 새들을 키웁니다

아이들이 저희를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당신께서 저희를 사랑하듯

저희가 아이들을 사랑하듯

아이들이 저희를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저희가 당신께 그러하듯

아이들이 저희를 뜨거운 가슴으로 믿고 따르면

당신께서 저희에게 그러하듯

아이들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며

거짓없이 가르칠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아이들이 있으므로 해서 저희가 있을 수 있듯

저희가 있으므로 해서

아이들이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게 해 주십시오

힘차게 나는 날개짓을 가르치고

세상을 올곧게 보는 눈을 갖게 하고

이윽고 그들이 하늘 너머 날아가고 난 뒤

오래도록

 

비어있는 풍경을 바라보다

그 풍경을 지우고 다시 채우는 일로

평생을 살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저희를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저희가 더더욱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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